[인터뷰] 예술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오주현 회원님을 만나다. 피스모모 10주년 기념 회원 인터뷰 #5오주현 회원 (예술약방 대표) 피스모모 10주년 기념 회원 인터뷰의 두 번째 주인공은 광주광역시에서 예술약방이라는 예술치료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오주현 회원님이다. 광주 시내의 한 카페에서 오주현 회원님을 만났다. 오은영(이하 영): 안녕하세요. 먼저 오주현 회원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오주현(이하 현): 저는 음악 치료 일을 하고 있고요, 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기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고 있어요. 영: 네, 피스모모를 처음 알게 되신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현: 제가 2015년에 음악치료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뭔가 제가 느끼는 감정이 뭔가 딱 도메인이 됐다고 느껴졌어요. 내 감정을 뭔가 더 다양하게 느끼고 싶다, 감각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몸을 굉장히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움직일 만한 걸로 막 찾았는데 3일 동안 음악, 미술, 그리고 움직임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바로 내가 원하던 건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신청했어요. 그때는 피스모모에 대해서도 잘 몰랐는데, 일단 프로그램이 시작하자 계속 춤만 추는 거에요. 너무 좋기는 한데, 힘들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약간 내가 생각했던 단순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었어요. 그때 참여하셨던 분들이 신부님, 수녀님, 금속노조 활동가 이런 사회 활동을 하는 그런 분들이었어요. 제가 평소에 만나보지 못했던 그런 분들이요. 20여 명 되는 참가자들이 정말 다양한 분들이셨어요. 영: 평화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현: 네, 평화 활동가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금속노조 활동가라던가, 사회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왜 오셨는지 이야기하셨는데, 그분들이 밖에서 활동하시면서 정작 본인들의 가정은 파괴가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뭔가 자기네들 안에서도 새로운 방식의 평화를 찾고 싶은데 그게 피스모모였고, 이 활동을 통해서 뭔가 새로운 방식의 스스로의 평화를 얻고 싶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이야기였어요. 민주주의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평화롭게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뭔가 제 안에서 균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때 저는 그냥 내 개인적인 삶을 충족하기 위해서 갔는데…. 그분들의 모습을 보니 그냥 개인적인 이유로 갔던 제가 미안할 정도였어요. ‘이분들은 이런 삶도 사는구나’ 그래서 그때 좀 많이 제 삶이 좀 약간 트랜스 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그때부터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평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보고 나니 내가 아는 것과 많이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내가 가진 달란트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어요. 바로 그 한 해 전에 세월호 사건이 있었을 때, 저한테도 정말 충격적이었지만 나는 내 가족 안에서 그 삶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같이해야 하는지를 배웠던 것 같아요.영: 피스모모를 알게 되기 전에는 평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현: 전혀 생각 안 했어요. 전혀 없었고 그냥 치료 치료사로서 좀 되게 따뜻하고, 공감해 주고, 이런 사람이었지 뭔가 평화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고. 세월호 사건 때 “저러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고, 약간 도덕적인 선에서 “이렇게 살면 안 돼”였거든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 굉장히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그것에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영: 저는 잘 모르지만, 오주현 선생님이 하고 계신 예술 치료라고 하는 영역이 피스모모의 프로그램과 닿아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예술 치료나 치료사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주실래요? 개인적인 치료나 내 삶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평화하고 연결되어 있는지요.현: 사실은 처음에는 그냥 개인적인 상처를 치유한다 이런 개념이었어요. 좀 더 깊이 이야기하면 저희 엄마와의 관계 때문인데요, 엄마는 저를 너무 잘 키우기 위해서 저에게 엄청나게 노력하셨어요. 엄마가 못다 한 공부를 하고, 못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정말 혹독할 정도로 공부를 시키셨어요. 그 과정에 감정적인 억압이나 폭력적인 행동 같은 것들이 따라왔어요. 특히 제가 큰 딸이다 보니 그런 것들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죠. 무조건 백 점을 맞아야 하고, 반장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주 배도 아프고, 두통에도 시달렸어요. 결혼하기 전까지도 엄마가 골라주는 옷을 입어야 했고, 엄마가 원하는 사람하고 결혼하길 바라셨죠.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심리 상담 공부를 하는 친구와 프로그램을 하게 됐는데, 갑자기 제가 깨달았어요. “내가 엄마의 인형처럼 살았구나”라는 걸요. 그때 머릿속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것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대학교 3학년 때였고,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 음악 치료의 길로 접어들게 됐어요. 그게 사회와 나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그렇게 음악 치료를 하면서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나에 대한 치료를 10년 정도 함께 했던 것 같아요. 언제가 오주현 선생님이 “대부분의 치료사들은 자기 자신을 치료하다가 치료사가 된다”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났다. 그 말은 바로 오주현 선생님의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영: 음악 치료를 해 오다가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순간에 피스모모를 만나신 셈인데, 그 부족함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요?현: 음악 치료를 하면서 좋았던 점이 많지만, 언젠가부터 점점 이 과정이 너무 타인의 삶에 대해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삶이 누군가의 잣대에 의해 “이것은 변화가 돼야 해”라는 식으로 규정당하는 거죠. 저 자신도 누군가가 저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경험을 하면 “저 사람이 내 삶이 뭐를 알고 왜 자꾸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싫은 거에요. 뭔가 나의 이야기를 규정하고, 답을 해주려고 하고, 고치려고 하고. 거기에 숨어있는 것이 ‘정상성’이라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정상’이 따로 있어서 “너는 비정상이야, 그러니까 정상으로 되돌려줄게”라는 식인 거죠. 그리고 그 정상이라는 것은 사회가, 특히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치료에 대해 조금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때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어요.사실 음악치료를 하면서도 엄마에 대해서, 엄마와 저의 관계에 대해서 “엄마는 나한테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전히 엄마에 대한 미움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엄마의 삶을 맥락적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우리 엄마의 삶을 누군가는 포용해야 한다는 걸요. 그 세대 사람들의 삶은 그런 거라는 걸 이해해야 하더라고요. 그런데 치료사들은 현재의 잣대로,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이 사람들은 틀린 사람들이야”라고 말하고, 그걸 죄의식으로 만드는 거에요. 그런데 사실은 이 사람들도 사실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던 거잖아요. 영: 그래서 피스모모를 알게 됐을 때 더 좋았던 건가요?현: 네 맞아요. 뭔가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의 그런 다른 관점과 방식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줬어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읽어나가는 거. 그런 공부를 해서 더 섬세하게 읽을 수 있고,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예술 쪽으로 뭔가 다른 방식으로 함께하고 싶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뭔가 함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 이후에 제 남편도 판타스틱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광주에 초청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영: 그 이후로 피스모모와 인연을 쭉 이어가고 계시는데요, 어떠신가요?현: 피스모모를 알게 될수록 더 많이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 보니 마음만큼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그런 점은 아쉬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피스모모의 문화예술 페다고지가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좀 줄어든 점은 안타까워요. 저도 많이 기여를 해야 하는 부분이라서 언제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문화예술 페다고지, 문화예술적인 교육 기법이라든가. 평화 메시지를 그렇게 전달하는 방식이 피스모모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 점에 가장 교감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영: 피스모모가 10년이 되었는데요, 지난 10년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맞았으면 좋겠는지 말씀 부탁드려요.현: 평화 활동이라고 하면 다른 곳에서는 뭔가를 이렇게 통제하는 그런 방식이었는데 피스모모에서는 1분 만에 아름답게 뭔가를 했던 것 같아요. 그냥 행복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만들어주는 곳이었어요. 지금 즐겁게 하는 그런 방식들이 항상 참여하게 했어요. 그런 우리만의 방식으로 뭔가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게 너무 좋아요. 많은 단체가 규모가 커지거나 오래되면 보여주는 그런 경직된 모습이 아니라, 피스모모만의 문화를 잃어버리지 말고 유연하고 열린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사에서부터, 피스모모의 미래까지 오주현 회원님과의 인터뷰는 많은 이야기와 감정이 오고 가는 시간이었다. 인터뷰 마지막에 피스모모 4행시를 부탁했지만, 오주현 회원님은 부끄러워하며 거부했다. 4행시는 거절하셨지만, 피스모모에 대한 애정은 4줄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것임이 틀림없다. 헤어지면서 숙제로 드린 피스모모 4행시를 내년에는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문화예술과 평화의 연결. 더 긴밀하게 만들어가는데 관심 있으시다면,피스모모 회원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