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모모 10주년 기념 회원 인터뷰 #1김영희 회원(춘천 둥구나무어린이집 원장)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초록 잎을 틔워 올리는 둥구나무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두런두런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뜨거운 여름날의 열기를 식히거나, 힘든 노동 끝에 곤한 낮잠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를, 그런 품 넓은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피스모모 1호 회원 김영희님을 만났다. 춘천 둥구나무어린이집에서 만난 피스모모 1호 회원 김영희님 ⓒ피스모모 오은영(이하, 오):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영희(이하, 김): 저는 어린이들과 생활하는 어린이집 원장입니다. 남편과 함께 35년 전, 교회를 개척하고 어린이집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어린이들과 만나오고 있습니다. 오: 발도르프 교육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김: 제가 유아 교육 공부를 하고 어린이집을 시작했던 게 아니고 목회를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운영을 담당했지만, 교육을 몰라서는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뒤늦게 유아교육을 공부했어요. 그러던 중에 어떤 교수님을 통해 발도르프 교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독일에 가서 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한 거죠. 그때 사실 세 딸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일 때여서 결정이 쉽지는 않았는데 딸들이 에너지를 줬어요. “엄마, 지금 안 하면 못한다.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해.”라고 격려를 해줘서 첫 발을 뗄 수가 있었어요. 특히 큰 딸이 마침 진로를 바꾸려고 하면서 휴학을 하고 집에 와 있겠다고 해서 가능했어요. 원래는 4년 과정인데, 실습과 이론을 함께 하는 거라, 한국에서의 어린이집 운영을 실습으로 인정받고 이론 위주로 2년 과정을 하는데 한 번에 못하고 왔다갔다 하면서 한 5년쯤 걸렸습니다. 그렇게 실제로 공부를 해보니 발도르프 교육이라는 것이 특별히 다른 것이 아니고 제가 저의 엄마에게 배웠던 교육 그런 거예요. 형식적인 교육과정이 아니라 그냥 삶을 가르치는 것. 그냥 함께 사는 것, 살면서 소소한 것들을 배우도록 하는 일이요. 생기가득한 미소가 인상깊은 김영희 회원님 ⓒ피스모모 여기서 공개할 비밀 하나. 김영희 회원님의 늦은 유학을 격려한 세 딸 중 맏이가 바로 피스모모의 창립멤버이자 대표인 문아영님이다. 1호 회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나름 궁금하다. 오: 피스모모 이제 1호 회원이시잖아요. 피스모모의 1호 회원이 되시게 된 사연을 좀 듣고 싶습니다.김: 문아영 대표가 코스타리카에서 평화교육학 공부를 마치고 이런 일을 하려고 한다고 알려줬어요. 저희 가족들은 모두 자립적으로 자기 일을 알아서 하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거나 간섭하지는 않고, 격려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 회원도 필요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래 조금 후원하자 이렇게 해서 회원가입을 하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저는 제가 1호 회원인지 몰랐어요. 나중에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오: 문아영 대표님이 코스타리카로 평화 공부를 하러 가기 전에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관심을 가져 보셨나요?.김: 평화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하면서 살았던 것 같지는 않아요. 특별히 평화가 인식되지는 않았던 삶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전쟁을 인식하면서 치른 사람도 아니고, 당시 아주 어렸고요. 보통 다 그렇듯, 학교에서 반공 교육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근데 저는 젊었을 때 해외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그런 일방적인 이념교육으로부터는 좀 해제된 사람이에요. 그래서 문대표가 코스타리카 갈 때도 네가 네 진로를 정해서 가는 거니까 환영했죠. 비용적인 면에서도 엄마, 아빠한테 아무것도 가져간 게 없이 그렇게 했으니까.(웃음) 그 방향성이 좋다고 생각했고, 뭔가 사람들한테 기여하고 자신의 인생에도 기여하고 그럴 수 있는 일이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죠, 당시에는. 오: 어쩌면 그 이후로 한국에서 평화가 이런 정도로 중요한가 혹은 평화와 관련해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게 되셨을 것 같아요.김: 그건 지금도 좀 어려워요. 우리 문대표의 활동들을 따라가면서 보면, 참 이게 범위가 보통 넓은 게 아니고, 너무나 추상적이고. 그런데 거기서 계속 뭔가 캐내서 뭔가를 일구고 있잖아요. 진짜 무슨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황무지에서 그냥 뭔가 계속 해내서 뭔가 만들고 있잖아요. 그런 게 정말 대견하다고 생각하죠. 그런 과정에서 평화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다고 해야 될까요? 평화가 얼마나 모든 곳에 있는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좀 생겼다고 할 수 있고, 또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에 대한 것도 인식하게 되고 그런 것 같아요. 오: 혹시, 피스모모 활동, 교육 프로그램이든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신 경험이 있으실까요?김: 관심은 되게 있는데 서울에서 주로 있으니까 멀기도 하고요. 또 대표를 생각했을 때 제가 참여하는 게 좀 불편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기도 하고 그래서 어떨 때 제가 물어봐요. “이거 너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면 “엄마 와 ”이러는데 오라고는 하지만 편안치 않을 것 같은 생각이 제가 들어요. 그래서 참석을 못하고. 그 전에 마이클 애플이 왔을 때 그때 제가 한 번 강의 들으러 갔던 적이 있었죠. 오: 피스모모를 10년 동안 지켜보셨는데요, 피스모모라는 단체와 또 그 단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10주년에 대해서 해 주실 얘기가 있을까요?김: 일단 젊은 사람들이 그런 의식을 갖고 같이 함께 출발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저는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무슨 밥벌이가 되지도 못한 환경인데, 그런 일을 함께한다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모두 서로 시너지를 내가면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너무 감사하죠.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그런 방향으로 가더라도 그렇게 진지함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간혹 하거든요. 그냥 뭐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말고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그 길에 들어서서 계속 가는 분들이 참 훌륭하죠. 앞으로는 이런 비영리 활동을 하는 분들이 더 인정받고, 이런 활동이 보편적으로 환영받는 직업이 되는 시대가 와야한다고 생각해요. 오: 피스모모가 향후의 10년은 어떤 모습일까요, 혹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요?김: 함께 일하는 분들의 삶이 풍부해졌으면 좋겠어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삶도 풍부해지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특히, 평화를 주제로 하는 단체들 중에 아직 그런 선례가 없잖아요. 물론,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피스모모가 그렇게 방향을 잡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염려를 한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문아영 대표가 지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죠. 하지만, 특별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또 그렇게 좋은 분들이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무국 분들 모두 너무 애쓴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애쓰셨다고 치하하고 싶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분명히 더 좋은 시간들이 오리라고 생각하고 또 그걸 향해서 가시길 바래요. 김영희 회원님을 만나보니 문아영 대표의 안목이나 에너지가 어머니를 꼭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스모모 김영희 회원님은 70년대 초반에 독일에 가서 8년 정도 간호사로 일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발도르프 교육을 받기 위해 독일로 떠날 결심을 하는 것이 좀 더 쉽기도 했다고. 김영희 님은 지금도 아이들과 생활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피스모모 회원되기